나의 한국어 첫걸음

2020年4月27日

(한국어가 어색한 데가 있으면 알려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내가 한국어를 본격적으로 배우기 시작한 것은 1990년의 일이었다. 아주 큰 마음이 있어서라기보다는 영어 공부를 아무리 해도 잘하지 못했던 나의 패자 부활전이라고나 하면 마땅할지도 모른다.

실은 내가 처음으로 한글을 유심히 본 일은 1978년 전후 일이었다. 초등학교 고학년생이었던 저는 같은 반 친구 어머니가 “LABO” 라는 영어 놀이 활동 교실을 주재하는 까닭으로 나의 어머니가 시켜서 그리로 다니게 되었다. 거기는 활동비와 교재를 판매하는 수익으로 운영하고 있었는데 우리 어머니는 영문도 모르고 영어뿐만 아니라 그 LABO 본사가 제작한 다른 언어 교재까지 샀다. 나의 기억으로는 그중에 불어와 한국어 교재가 있었다. 그때 한국어에 대해서 아무것도 몰랐던 내가 그 한국어 교재 표지에 쓰여 있던 한글을 처음 보고 품은 인상은 지금도 잊지 않고 있다. 그것은 이응 글자가 폰트에 따라 차이가 있는 걸 보고 서로 다른 글자로 오인해서 글자가 너무나 세세한 규칙으로 만들어져 있는 것이 아니냐는 것이었다. 즉 돋음체의 이응은 완전한 원형 또는 타원형인 반면, 바탕체의 이응은 맨 위쪽에 조그만 점이 불뚝 나와 있다는 그 차이를 알아본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어이없는 오해였지만 수학이나 자연계를 잘한 나로서는 아무 것이나 꼼꼼하게 보는 성격이어서 그런 발견을 한 것으로 생각한다. 단 그 친구 집 LABO 놀이 활동은 주재하는 선생이 영어를 빼고서는 다 할 줄 몰라서 그 오해를 풀 기회는 없었다. 그 이후 한국어에 대해서는 그냥 “까다로운” 글자를 가진 언어라는 인상만을 1986년까지 가지고 있었다.

그러한 내가 한국어에 대해서 다시 관심을 갖게 된 일은 1986년 일이었다. 대학 입시 때 붙을 엄두도 내지 못했던 도쿄대 이과1류(理科1類)에 붙어 대학생이 된 무렵 스포츠 뉴스에서는 1988년 서울 올림픽 뉴스가 많이 나오고 있었다. 그에 아울러 한국에 대한 화제도 종종 접하게 되었는데 그중 나의 관심을 강하게 끈 것이 한국어가 일본어와 비슷하다는 사실이었다. 자연계 교과는 곧 잘하는 반면 인문계 과목에는 재능이 없어서 영어 성적이 전국평균을 간신히 웃돌던 나는 언젠가는 외국어 하나라도 잘해 보고 싶다는 욕구가 센데 한국어야말로 그것을 실현할 수 있는 언어가 아니냐는 생각을 갖게 된 것이다.

그러나 특별한 목표도 없이 자신이 어떻게 붙은 지도 모르는 대학 생활 초반에는 나는 말 그대로 놈팽이 생활을 지냈다. 학교는 상습적으로 땡땡이를 치고 집에서 뒹굴뒹굴하기만 하는가 하면 마냥 국내 배낭여행만 나서곤 했다. 그런 내가 갈 길이 먼 언어 학습을 계속해 나갈 리가 없었다. 한국어를 제3 외국어 과목으로 한두 번 등록을 해서 확실히 일본인에게는 배우기 쉽다는 것은 알게 되었지만 특별한 노력을 들이지 않은 채 어느새 멀어져 간뿐이었다.

나는 대학교 공부를 안 하는 탓으로 성적이 특출나지 않아서 그때 만 해도 인기가 없었던 건축학과에 진학하게 되었다. 그러나 꼼꼼한 작업이 요구되는 설계도나 예상 완성도 제작 실습을 견디지 못해 일부러 학점을 안 따서 진학을 취소했다. 그다음 해는 지리학과 진학을 지원했지만 성적이 못 미쳐 유급해 도합 2번 유급했다. 그때 3, 4년은 나의 인생 중 가장 우울했던 시기이며 흑역사라 할 수 있는데 그런 시절에 외국어 공부가 어떻게 손에 잡힐 리가 있는가.

도쿄대 입학 4년 후인 1990년에 겨우 지리학과에 진학하게 된 후도 놀고 다니는 생활은 여전했지만, 진학 후 1년째에 조사한 홋카이도 농경마(농사를 지는데 쓰이는 말) 마필 산업에 대한 리포트가 교수진에게서 예상 밖으로 호평을 받아 그것에 힘입어 다음 해에는 졸업논문으로 한국에 관해서 뭔가를 조사해 보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것을 기회로 삼아 한국어도 배울 수 있으리라는 작정이었다. 그러나 인터넷은 고사하고 위성설비를 통해서 하는 해외방송마저 없는 그 시절에 생활감이 있는 외국어를 접하는 일은 영어를 빼고서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더군다나 한류 붐이 일어나기 한참 전인 그 당시 한국어를 배우려는 사람은 거의 없었고, NHK 한국어 학습 프로그램은 이미 1984년에 시작되고 있었는데 당시 알고 있던 바로는 교과서 판매 수가 다른 언어에 비해서 매우 적은 상태였다. 나는 먼저 자습으로 공부하는 한편 어떤 잡지의 외국인 펜팔 모집에 응모해서 친구를 얻게 되었다. 그 친구는 그 당시 대구 계명대 일본어학과에 다니는 학생이었다. 그 친구의 일어에 비해서 나의 한국어가 훨씬 서툰 상태라 누가 어떤 언어로 어떤 식으로 편지를 썼는지 이제 기억이 안 나지만 하여간 자습과 펜팔로 나의 본격적인 한국어 학습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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